성경요약

스가랴서 요약

doo-- 2023. 12. 1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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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서 살펴보기

 

흔히 스가랴서에 대해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고 이야기 되어 지고 있습니다.

스가랴서를 읽어봤을 때, 선지자가 요한계시록처럼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올라가 재판이 벌어 보는 장면, 또 어떤 일들에 대한 것을 화면 보듯이 선지자가 보고, 그 의미들을 설명듣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러한 점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 스가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입니다. 그의 조부는 잇도이고 부친은 베레갸이다(1:1). 학개 선지자와와 동시대에 예언한 선지자이다(1:1).

 

(23:35). 스가랴 아버지 베레갸(Berekiah)는 마태복음에는 바가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2:4) 스가랴의 조부 잇도가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따라 귀환한 제사장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따라서 스가랴는 레위인이자 아론의 자손이자이었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 스가랴를 택하신 이유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레위자손 이라는 것도 이유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스가랴서의 역사적 배경: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고,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바벨론의 포로였던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귀환과 그들의 성전을 건축하도록 허락합니다(1:2-4; 44:28). 그때 5만 명의 유대인들이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인솔하에 이스라엘로 귀환했다(2).

 

귀환한 공동체가 성전은 완공 안외었지만, 우선 번제단 은 완성하고, 그 번제단에 레위인에 의한 희생 제사가 다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귀환한지 2년만에 성전의 기초가 놓여지게 되었다(3:8-13; 5:16). 그러나 예루살렘 주변 민족이 이스라엘 재건을 싫어하여, 성전공사를 방해하였고, 이로 인해 16년 이나 성전 공사가 중단됩니다.

세월이 흘러

다리우스(다리오) 2년에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일으켜서 유대 백성들로 성전 재건을 하도록 촉구하셨고

학개가 첫 번째 메시지를 전한 지 2개월 후에 스가랴 선지자의 하나님의 대언 사역도 시작됩니다. BC 520년으로 추정됨.

대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을 대신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1.

1 “다리우스 왕 28월에 주님(원문은 야훼)이 스가랴에게 말씀하셨다.”로 시작합니다.

 

2-3 ‘나 주가 너희 조상에게 크게 화를 내었다.’로 시작 한다. 그러므로 스가랴 너는 백성에게 가서 너희는 내게 돌아와라.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간다.’라고.

하나님은 유대 민족의 악행에 하나님이 화가 나셔서, 예루살렘을 떠나시고, 유대인들도 세계 각 곳으로 흩뜨십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이제, 70년이 지났으니, 하나님께서 화를 푸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테니, 너희도 돌아오라고 하시는 겁니다.

마치 흩어진 가족이 다시 모이는 드라마 같기 도하고, 하나님과 인간이 핏줄로 연결 된 것 같은 느낌에 진한 감동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4-6 “너희 조상을 본받지 말라. 그들은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너희는 형벌을 받고 돌아와서 고백하기를 마땅한 벌을 받았습니다.’ ”라고 한다.

 

7-22 7절은 다리우스왕 211째 달에 다시 스가랴에게 말씀 하셨다고 하면서 시작하고, 이것은 3개월 만에 내린 말씀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한 번 읽어서 이해가 어려웠고 여러 번 읽어서야 대강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화석류 나무사이에 붉은말들, 밤색말들, 흰말들로 이루어진 기병대 천사들의 무리가 나오고, 그 기병대가 온 땅을 두루 돌아다녀 살펴본 내용을, 한 천사에게 보고 하는 장면입니다.

, 하나님이 기병대 천사들을 온 세상에 보내, 세상의 상황이 어떤지 순찰하고 오라했고, 그들이 돌고 와서는 세상의 상황에 대해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보고 받는 천사는 최소한 천사장 쯤 될 것이고, 예수님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여기서 기병대의 보고 내용은, “온 땅이 조용하고 평안하였습니다.”입니다.

노우호목사님 해석은, 이 장면을 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온 땅이 평온하면 괜찮은 상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하나님입장에서 보면, 바빌론이란 나라가 유대민족을 아주 심하게 때리고는 평온하게 살고있는 상태. 또 온 세상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는 상태. 마치, 마치 자기 자녀를 어떤 힘쎈 놈이 때리고는 두 다리 쭉 뻗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보고 받는 것과 같은 아주 불쾌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기병대의 보고를 받은 천사가 야훼 하나님께 언제까지 바빌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민족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렵니까, 노하신지 70년이나 되었습니다.”라고 야훼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용서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하시고, 그 말을 들은 야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이 평안다고! 평안하게 사는 모습 보니 화가 나는 구나. 이스라엘을 적당히 징계하라고 몇몇 이방 나라 놈들에게 큰 힘을 주었더니, 이놈들이 힘세졌다고 교만해져 이스라엘 징계를 넘어 마구잡이 살육과 노예 착취로 잘살고 있다니! 아무래도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시 성읍을 세우고, 시온을 위로해야겠다.” 라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이라 추정되는 천사가 이 말씀을 받아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전달합니다.

이후에 야훼 하나님이 네 명의 기술자 천사들에게 이방 나라들의 뿔을 다 꺾으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을 온 땅으로 흩어버릴 때 뿔 달린 네 나라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뜻이 겠지요. 이 나라들의 뿔을 꺾으려는 것을 마치 기술을 가진 장인이 뿔을 뽑는 것과 같으니, 뿔을 뽑는 기술을 가진, 기술자 천사들을 부르는 것이 동영상처럼 선지자에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1장의 내용을 들은 유대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온 땅에 흩어져, 타향 살이의 고생을 했던 유대 민족 사람들. 이들이 약 70년 만에 이스라엘의 재건을 위해 고향인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돌아왔지만, 성전 도없고, 성벽도 없고, 번듯한 집, 일터 이런 것들이 제대로 안 갖추어져있고, 주변 민족의 방해받는 초기 개척자적 삶.

처음부터 하나하나 재건해 가야하는 포로 귀환 공동체의 입장에선,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돌아오시고, 이방 강대국의 뿔을 뽑겠다는 말씀에. 정말 큰 위로와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우리로 치면, 일제 압제, 그리고, 6,25직후, 나라를 다시 재건 해야 하는 시기에,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러한 말씀을 주셨다면, 정말 큰 위로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제 압제나 6.25가 우리 민족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고, 나라를 재건 하는 상황에 대한 비유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2. 그 다음 환상은 예루살렘이 번성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1-5 측량줄 가진 천사가 나타나니, 스가랴가 그 천사에게 무엇을 하러 가십니까?’하고 물어보고, 그 천사가 대답하길 예루살렘의 길이와 넓이를 재러 간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말은 이제 성벽 재건등의 도시 재건 계획이 실행되려고 한다는 의미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으로 추정되는 천사가 그 천사에게 너는 그(스가랴)에게 예루살렘 성벽으로 두를 수 없을 만큼 사람과 짐승이 많아질 것이고, 심지어 예루살렘 벽을 넘어 번성할 것이다. 그래서 벽을 넘어 서는 무리들도 보호받도록, 내가 큰 원을 둘러 직접 불 성벽이 되어 지키겠다. 그리고 그 안에 나도 살면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라고 아주 구체적인 재건된 예루살렘의 모습을 알려 주십니다.

이것 역시 귀환해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6-9 은 이스라엘 민족에겐 출 바빌론을. 바빌론 뿐만 아니라 유대 민족이 흩어져사는 여러나라에게 선지자가 경고의 말을 전하는 부분입니다. 마치 출애굽과 비슷한 상황인데요.

이스라엘 민족에게 북쪽땅에서 어서 도망쳐 나오라고 하시고,

너희를 건드리는 자들은 내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다. 주님이 손을 들어 치면 저희가 부리던 종들에게서 노략질 당할 것이다. 그 때 너희는 여호와가 나(선지자)를 보냈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는 말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10-13은 스가랴 선지자가 기뻐서 이러한 상황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것 같습니다.

내가(여호와) 시온으로 가니 기뻐 노래 불러라. 많은 이방 백성들도 주님께 와서 그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런 기쁨이 담긴 노래 가사처럼 기록 되어 있습니다.

 

3. 다음 환상은 여호수아 대제사장이 죄 사함 선언 받은 것과 복직장면입니다. 유대민족이 제사장 나라로서의 회복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하늘 보좌에서 마치 재판이 벌어지는 장면인데요. 예수님으로 추정되는 천사가 있고, 그 앞에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냄새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 오른쪽에 사탄이 서서 마치 검사라도 되는 것처럼 여호수아 제사장을 고소합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이 사탄을 책망합니다. “사탄아, 내가 너를 책망한다.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선택해고, 이 사람은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이다.” 사실. 불에서 꺼낸 나무토막, 이것이 어떤 뉘앙스의 비유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누군가 불구덩이에 있던 것을 꺼낸다는 것은 굉장히 소중 한 것이기에 불타는 도중에라도 급히 꺼내는 것 아닐까요?

아무튼, 사탄 네가 내가 사랑하는 민족을 비방과 고소하다니, 나는 너를 책망한다. 하시는 것 보면, 그렇지 않아도 주님의 징벌 받아 포로로 끌려간 유대 사람들이 굉장히 자존감이 낮아지고, 또 주변국들의 비아냥거림에 참 서러웠을 것인데, 이런 하나님의 판결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되겠지요.

어쨌든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은 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4절에 죄를 벗겨준다고 합니다. 또 더러워진 옷은 벗기고 예복을 입히고, 그리고,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스가랴는 기뻐서 머리에 관도 씌워 달라고 말하니, 천사들이 관을 씌웁니다. 이것은 제사장직의 복권이라고 해석들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장면 역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는 이제 징계는 끝나고 자신들의 제사장 민족으로서의 지위 회복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겠지요. 이것도 귀환 공동체에겐 큰 위로가 되었을 겁니다.

 

이제, 예수님으로 추정되는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말을 전합니다. ‘내 도를 준행하며 율례를 지키면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이렇게 말하고, 그리고 여호수아와 귀환 공동체에게도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 너희들이 징표다, 어떤 일의 징표냐 하면, 내가 새싹, 혹은 새순 이라는 불리는 종을 보낼 것인데, 그 일의 징표다. 또 여호수아 앞에 돌 한 개를 놓는다. 그 돌은 일곱 눈을 가졌고, 그 돌이 이 땅의 죄를 하루 만에 없애겠다는 글을 새긴다. 그날이 오면 너희가 서로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가 나무 아래로 이웃을 초대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여기 새순은 이사야 선지자에서 언급 되는 예수님의 모습 묘사 같습니다.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일곱 눈 가진 돌은 계시록의 일곱 눈 가진 어린 양과, 다니엘서의 돌. 다 예수님 묘사하는 하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2:34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계시록 56절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이사야에도 많지만, 스가랴서도 꾀 구체적으로 나오고,

지금 현재 대제사장, 스가랴, 귀환공동체가 메시야 도래의 징표라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사회상인데요. ‘자기 땅에서 이웃과 더불어 화목한 삶.’이네요. 이것은 미사서가 그리는 하나님나라상과 똑 같습니다.

[미가 4 :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4. 순금 등잔대와 두 올리브 나무. 환상. 성전 회복의미

1. 내게 말하는 천사가 깨우는 장면인데,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 같다는 것. 그러니까. 지금까지 본 환상은, 바울도 말한 내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 지모를 경험이었다고 하는데요, 무아지경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경험 아닐까 싶습니다. 선지자의 입장에서 하늘 보좌에서의 일은 그렇게 무아지경처럼 느껴졌고, 이제 부터는 잠에서 깬 것 같이, 꿈이 아닌, 맑은 정신으로 본 환상이라는 것이죠.

 

2-9 가지가 7, 그 가지들 끝에 기름 그릇이 달린 순금 등잔대가 보이냐고 예수님 추정 천사가 말하고 선지자는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등잔대 좌우에 올리브 나무 한 그루씩 서있습니다. 선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물으니 유다 총독 스룹바벨이라고 합니다. 이 스룹바벨은 예수님의 족보에 있는 사람이지요.

힘으로 되지 않고, 권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나의 영의로 될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세상적 힘이나 권력으로 성전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으로 회복 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스룹 바벨이 머릿돌을 떠올 것인데, 사람들이 그 돌을 보고 아름답다 아름답다할 것이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실제 적인 성전 건립을 의미하지만, 신약의 성전인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도 의미 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8-10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이 성전 기초를 놓았으니 그 일을 마칠 것이라고 하시고,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 자들이 누구냐? 스룹바벨이 측량줄을 잡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10절에 단순히 ‘7일라는 의미의 단어가 나오는데요. 그것이 정확이 어떤 7을 의미하는지 모르니 번역하는 사람들은, 온 세상을 살피는 여호와의 눈(7)이라 번역하기도하고, 공동 번역에는 등잔7 개를 가리키는 것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아마 등잔대와 올리브 나무에 대한 이야기 맥락이니, 7이라는 숫자는 일곱 개의 등잔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고, 10절에는 성경 자체가 그 등잔이 온 세상을 살피는 여호와의 눈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11-14 올리브 나무에 대한 설명인데요. 두 올리브 나무가 순금 등잔에 기름을 공급하는데, 여호와를 섬기도록 거룩히 구별된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계시록 11장에도 여호와를 섬기는 두 종을 두 나무에 비유한 장면이 나옵니다. 다만, 계시록의 나무는 감람나무로 표기 되나 영어로는 올리브나무 입니다.

[참고로 스가랴서의 올리브 나무는 자이트라는 단어로서 우리말 사전에는 올리브나무, 감람나무둘 다 같은 의미라고 나옵니다. 계시록11장의 나무는 엘라이아라는 단어인데, 감람나무로 쓰고, 영어로는 올리브나무라고 합니다. 자료들을 찾아보니, 감람나무는 중국의 올리브 나무와 비슷한 나무로서 오역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영어나 한국어 번역은 스가랴서나 계시록이나 둘 다 올리브 나무로 표기 가능하고, 구약 히브리어는 자이트, 신약 헬라어 엘라이아 라는 단어지만 둘 다 올리브 나무를 지칭 한다고 하니... 같은 나무로 봐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

 

정리해 보면, 등잔대는 스룹바벨(성전 완성할 자), 그 위에 달린 등잔 일곱은 여호와의 눈, (온 세상을 살피시는 분 상징), 그리고 그 등잔에 기름을 공급하는 올리브 나무는 기름 부음 받은 섬기는 자. 아마, 학개와 스갸랴 선지자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전체적으로 유형, 무형의 성전의 완성의 모습 아닌가 싶습니다.

 

5. 날아가는 두루마리. 와 뒤주 여인, 이 땅의 범죄자들 없애고, 죄악들을 멀리 쫓아냄.

 

1-4 천사가 무엇을 보냐고 물으니, 스가랴가 오늘날의 도량형으로 계산하면, 길이는 약 9m, 넓이는 약 4,5m 정도의 두루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천사의 설명은 한쪽 면에는 도둑질 하는 자들이 없어질 것, 다른 쪽 면에는 거짓 맹세자 들을 모두 없앨 것이다. 라고 쓰여 있다.’ 라고 주님이 내가 저주를 보내는데, 도둑의 집과 하나님이름으로 거짓 맹세자들의 집에 들어가 그 집을 다 허물어 버릴 것이다.’라고 합니다.

보통 하나님이 어떤 일을 실행 하시는 데 천사들을 시켜서 일을 하시기도 하는데, 이렇게 글이 쓰인 두루마리 자체가 가서 그 일을 실행 하는 것을 보여주시기도 하네요. 계시록에 보면, 인봉한 두루마리가 나오는데, 그 두루마리를 예수님이 펼칠 때 마다 그 안의 내용들이 실행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11 새번역은 뒤주 속 여인이라는데요. 뒤주로 번역한 이유가. 원문엔 에바라는 어떤 곡물을 재는 단위, 그런 것을 써서 인 것 같습니다. 공동번역에는 말이라고 번역했고요. 아무튼, 죄악의 열매들을 다 쓸어 담은 상자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고, 거기를 열어보니 여인이 앉아 있는 것으로 표현. 그러서 납뚜껑으로 닫으니, 학날개 가진 두 여인이 그 뒤주를 가자고 바빌론 땅으로 날아갑니다. 거기에 신전이 완성되면 그 뒤주를 둘 것이라는데, 죄악을 섬기는 바빌론, 론쯤 되겠지요.

뒤주 속 여인 하니, 연상 되는 것은 계시록 17장에 보면, 음녀가 나오고, 그 음녀는 도시라고 해석 되어있습니다. 아무튼 바빌론 땅의 도시의 악한 문화?, 어떤 죄악을 들을 다 담아서 바빌론을 보내고, 예루살렘 땅은 청소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

 

6. 병거 네 대 환상.

1-8 놋쇠로 된 산 사이에서 병거 네 대가 나옵니다. 붉은 말들, 흰 말들, 검은 말들, 얼룩말 들, 천사의 설명은, 이들은 하늘의 네 영이고, 하나님을 뵙고 떠난 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새로운 임무를 받아 떠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북쪽은 검은 말, 서쪽은 흰말, 남쪽은 얼룩말. 이렇게 떠난 다고 하는데, 그럼, 붉은 말은 동쪽으로 간다라고 해야 하는데, 이 말은 빠진 건지, 생략 된 건지모르지만,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튼 네 병거가 떠난 다고 하니, 붉은 말 병거는 동쪽으로 간 것으로 추정해도 무난할 것 같습니다.

1장의 말 탄자들은 상황을 살피는 역할이었다면, 이들은 확실히 전쟁에 쓰는 병거, 오늘날로 치면 탱크 같은 것이니, 전쟁 같은 이런 것, 혹은 사탄의 방해를 뚫고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역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이 전차들이 달려 나가려 하니, 천사가 허락하며, 땅을 두루 돌아다녀라 하시고. 특별히 북쪽 땅으로 나간 말들이 내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로 변역되어 있는데, 원문은 하나님의 영이 평안해 졌다.’로 직역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더 추정해 보면. 오늘 날로 치면 탱크와 같은 병거를 타고 천사들이 동서남북으로 명을 받고 나갔는데, 스가랴 1장에서 온 세상이 평온하더라는 보고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곤, ‘내가 사랑하는 예루살렘을 심하게 짓밟고는 평안하다니!’ 하고 화를 내셨던 장면과 연결해 보면,

지금 병거를 타고 가는 천사들의 임무는 이스라엘 사방의 나라들에게 전쟁이 터지게 하여 혼돈을 주러 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이건 상상력으로 어떤 임무를 띈 것인지 생각 해 본 것 뿐입니다.

 

9-15절 까지의 내용은, 여호수아 대제사장의 왕관제작, 메시야 약속 입니다.

[‘헬대, 도비야, 여다야, 이들이 은금을 바치러 바빌론에서 와서, 요시야집에 와있으니 이들에게 은금을 받아서 여호수아 대제사장의 왕관을 만들어 씌어라.’ 라고 하십니다.

순이 자라, 성전도 짓고, 왕좌에 앉아 다스릴 것이다. 한 제사장이 그 왕 좌 곁에 설 것이며, 이 두 사람이 조화이루며 함께 일 할 것이다.’ 라고 예언하라 하시고,

그리고, ‘대 제사장의 왕관이 완성되면, 헬대, 도비야, 여다야, 요시야를 기념해서 성전에 둘 것이다. 라고 하시고, , 먼 곳 사람들이 와서 성전 짓는 것을 도울 것이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너희가 순종하면 이일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면서 6장이 마무리 됩니다.

여기서도 순(즉 연한가지)이 자라 성전 짓고 왕의 역할도 하는 것은 예수님의 예표로 해석 해 볼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곁에선 제사장은 교회를 뜻한다는 영적 해석도 해볼 수는 있겠으나. 아무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 회복과 왕권 회복, 즉 나라로서의 기능이 회복 된다는 의미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스라엘은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세워 졌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너희가 순종하면이라는 구절 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은 순종인데, 저 개인적으론, 이것이 하나님께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기 좋아하시고, 그것에 우리가 비위를 맞추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순종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그분이 마음, 그분이 선하신 뜻이 무엇인가? 잘 헤아려보고, 잘 듣는 가운데, 그런 것이 가능 한 것이니, 하나님과 진실한 마음을 나누자는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진실한 마음을 나누기 원하신다는 것으로 저 개인 적인 생각입니다.

 

7.

다리우스 왕 494일에 다시 말씀이 임합니다. 지난번은 다리우스 왕 211월이니, 2년 조금 안된 시점에서 다시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2-6 베델에 사는 사람이 사례셀과 레겜멜렉이란 사람을 성전 제사장과 예언자들에게 질문하러 보냅니다. 질문 내용은 주님께 은혜 받기 위해서, 수년간 해오던 대로 5월에 애곡하면서 금식을 해야 합니까?”라고.

스룹바벨 성전은 다리우스 왕 6년에 완공되는데, 4년인 시점에서도 이런 질문 하는 것 보면은, 어느 정도 성전이 지어졌고, 미완공이긴 하지만 제사도 들여지고, 예언자들도 활동했기 때문에, 베델 사람은 이정도면 하나님의 용서가 임했다라고 생각해 더 금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질문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너희가 70년간 5월과 7월에 금식하면서 애곡 했지만, 진짜 나를 생각하면서 금식했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도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하지 않았냐?’ 이 말은, 너의 애곡과 금식이 너희 만족을 위해 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해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그러면서 스가랴에게 주님이 설명 하듯 말씀하십니다. “예전에 너희가 바빌론 포로 잡혀가기전에 내가 예언자들을 보내서 공정한 재판을 하고, 관용을 베풀고, 고와와 과부,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했는데, 너희가 귀를 막고 안 들어서 결국 내가 너희를 다 흩어 버린 것이다.”

이 말은 지금 너희가 경건의 모양으로 애곡과 금식을 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너희가 나에게 징계 받은 이유가 하나님 백성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아직도 못 깨닫느냐. 내게 은혜 받는 길은 금식이 아니라, 공의 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좀 깨달아라!”라는 뜻 같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참 충격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금식기도하면, 빠짐 없이 예배 드리면, 경건의 시간을 빼먹지 않으면... 이 것들의 뒤에, 이렇게 하면 무언가 좋은 은혜 받겠지.’하는 생각이 있다면, 정말, 이것은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지 정말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 말은 정말, “네가 아무리 금식이나 경건 추구해도, 그건, 너의 행복추구일 뿐,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다.”라는 뜻이 됩니다.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과 상관있는 삶은 자기 행복 추구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 행함과 가난한자 약자를 돌보는 것을 주어진 힘대로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고, 하나님과 상관있는 삶이라는 겁니다.

근데, 예수님 올 때까지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 것을 깨닫지 못하고, 금식과 밖에서 기도하는 경건의 모양만 추구하다. 예수님께 너희가 선을 행하지 않는 위선자들!’이란 호된 꾸지람을 듣습니다.

오늘 우리도 철야예배, 새벽기도, 30일 금식 등등 경건한 것을 행하는데 있어, 그 목적이 결국 세상적 복을 받겠다는 것이면,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나와는 상관없는 일다.’ 하실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신약의 우리가 의로운 일로, 어떤 공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은 맞는데,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할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도리이지, 선을 행하지 않고, 복 받고자 경건 추구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너의 삶은 나와 상관없다.’라고 하실 가능성이 큽니다.

 

8.

1-17 여호와께서 말씀 하셨다. “나는 시온을 사랑한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왔다. 노인들이 장수하며 아이들이 광장에서 뛰놀 것이다. 내 백성들을 동서에서 구해내겠다. 여호와의 성전을 다시 재건하려 기초를 놓는 오늘, 예언자의 이 말을 듣는 자들아. 힘을 내어라! 전에는 너희가 일해도 품삯을 떼이거나 불안한 치안에 문 밖에 나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전 같이 대하지 않겠다. 풍년이 들게 하고, 저주받은 백성이란 꼬리표가 떨어져 복 받은 사람들이란 표가 붙을 것이다. 너희 조상에 재앙 내리기를 작정했으나 너희에게는 복을 주기로 작정하였으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서로 진실을 말하고, 공의롭게 재판하고, 평화를 이루며, 이웃 해칠 생각은 말며, 거짓 맹세하지 말라! 이런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다.”

여기 89절의 새번역 성경의 번역은 헷갈리게 번역되었습니다. ‘지금 이 예언자의 말을 듣는 너희는이라고 해야 되는데, ‘그 예언자들이 전한 말을 듣는 너희는이라고 번역해서, 예언을 전하는 전달자와 청자, 시제가 완전히 헝클어진 번역이 되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이 지금 이 예언자의 말을 듣는 너희는이라고 비교적 시제에 맞게 번역된 것 같습니다.

 

18-23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4, 5, 7, 10월의 금식일이 바뀌어 기쁨의 절기가 될 것이다. 너희는 성실과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 수많은 민족의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강대국들도 은혜를 구하러 올 것이다. 이방인 열 명이 유다 한 사람의 옷을 붙잡고 너와 함께 가겠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신다. 라는 말을 들었다.’할 것이다.”

 

9.

부터는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이 정확히 어느 시대의 이야기인지 특정하기는 어려운 이야기들인데, 마치 시공간을 넘나들며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주시기도 하고, 어떤 명령을 수행 하도록 하시기도 합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 같은 것은, 한 다섯 가지의 다른 역사적 상황을 왔다 갔다 하는 듯이 보이는데, 1) 바빌론 포로 이전의 잘못을 책망하시고, 징계하시겠다는 상황.

2) 바빌론 포로에서의 회복시키는 상황 3) 바빌론 포로에서 회복 된 이후에 다시 이스라엘이 타락해서 징계 받을 경고 받는 상황, 4) 메시야 탄생 배경적 상황 5)요한계시록처럼 아주 먼 미래에 일어날 상황. 이러한 5가지 상황이 펼쳐지는 것 같고, 연결성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 같아 해석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과거의 조상들의 잘못을 책망 하는 가 싶더니, 갑자기 메시야 탄생 배경, 지도자들의 잘못에 대한 책망과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 파괴, 먼 미래의 모든 민족과 싸우는 예루살렘의 이야기 등등.

스가랴 선지자가, 마치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장소에 서서, 과거 현재 미래를 왔다 갔다 하면서 보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궁극적인 메시야 도래와 먼 미래에 최후 승리를 하시는 하나님 등등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 예언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9장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하드락은 다메섹 동쪽에 위치한 성읍과 그 지역의 명칭]

1-6 주님의 경고가 하드락과 땅에 내리고, 다마스쿠스에 머문다. 하맛, 두로와 시돈, 아스글론, 아스돗 등을 멸할 것이다. 그들이 씹는 역겨운 제물을 꺼내주겠다. 그래서 남은자는 여부스 사람처럼 유다에 통합시키겠다. 적이 내 백성을 침범 못하게 하겠다.

 

9-17 앞으로 올 왕. 예수님.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네 왕이 오신다.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그분은 예루살렘의 군마를 없애고, 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이 바다에서 저 바다 끝까지 다스릴 것이다. “예루살렘은 피로 맺은 언약이 있으니 제 백성을 구할 것이다. 사로 잡혀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아 이제 요새로 돌아오라. 너희에게 두 배로 갚아 주겠다. 시온의 자식들로 그리스의 자식을 치게 하겠다.”

여호와께서 원수를 섬멸하며, 백성들은 보석같이 빛날 것이다. 총각들은 햇곡식으로 튼튼해지고, 처녀들은 새 포도주로 피어날 것이다.

913절에 시온의 자식들로 그리스의 자식들을 치게 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이 역사에서 이 예언은 부분적으로는 신구약 중간에 있었던 유대 마카비(시온)와 셀류키드 왕조(헬라)의 싸움으로 성취 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예수님이후 로마에 기독교가 공인 된 것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장도 9장처럼, 과거나 미래의 일들, 메시야 약속, 어느 한 시점만 나오는 것이 아닌, 여러 시점의 일들이 번갈아 가면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한 시제들을 잘 구분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맥락이 일관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10장으로 들어가 보면, 바빌론 포로귀환해서도 하나님 섬기기에 실패 하는 내용 같습니다.

지도자들이 자기 역할을 안 하니, 그들에게 분노하시고, 직접 인도하시겠다고 함.

1. 봄비와 밭의 채소를 주시는 분은 여호와시니, 그 분에게 빌어라. (이 말은 너희에게 필요한 농사 날씨와 식물, 땅 등 진정한 공급자는 하나님이시니 그분을 의지하라는 것)

드라빔 우상은 헛소리나 하고, 점쟁이는 거짓 환상을 보며, 꾸며낸 이야기 밖에 더 하느냐? 왕과 고관과 제사장 같은 지도자들이 이런 자들을 의지하니,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방황밖에 더 하는가?

이에 주님이 나의 분노가 목자들에게 불처럼 타오른다. 그들을 벌하겠다.”

지도자라는 자들이 이지경이니, 여호와께서 친히 백성을 돌보시고, 백성들을 용사로 만드실 것이다.

4절에 유다에서 모퉁잇돌과 같은 사람이 나오고. 온갖 통치자가 나온다.

관주 [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예수님에 대한 예언 구절로 봐도 되겠지요.

이후에 12절 까지는, 흩어졌던 유다 족속을 다시 돌아오게 하여 옛날처럼 번성하게 하겠다가 주요 내용입니다. 여기서의 귀환은 스가랴 선지자가 바빌론 포로에서의 이미 귀환했기 때문에 바빌론에서의 귀환은 아닐 것이고, 바빌론 포로 이후에 흩어졌다 귀환하는 것으로 봐야하는데, 예루살렘이 완전히 무너져 유대민족이 흩어지는 것은 AD70년 티투스황제 때의 일이니, 아마도 그 이후에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때 이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생각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11.

레바논 : 시리아지역, 레바논의 백향목은 솔로몬 궁전을 지을 때 사용 되었다. 바산의 상수리 나무들은 배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

1-3은 독립 적인 내용 같기도 하고, 10장의 내용의 연장선에서 하나님이 직접 유다 족속을 모으시는 과정에서 레바논 즉 시리아 지역과 바산, 요단지역의 이방사람들을 물리치겠다는 내용으로 볼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레바논, 바산, 요단 지역이 주님을 심판을 받는 내용이겠지요.

 

4-17절은 정말 해석이 어려운 내용 같습니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 다른 역본들도 각기 내용이 전혀 달라지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번 읽어본 끝에 대충 이러한 의미들을 가진 본문 내용 아닌가 추측해 보았습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장사꾼 목자들입니다. 보통 목자들은 양떼를 잘 돌보아 그들의 양털을 얻는데, 이 장사꾼 목자들은, 양을 식용으로만 기르고, 도축자에게 팔며 부자가 되기를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이 목자들이 미래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 바리새인등의 고관들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스가랴 보고, 장사꾼 목자들한테 가서 내가 대신 양떼를 돌보겠습니다. 하고, 네가 그 양떼를 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마도 장사꾼 목자들에게 더 이상 양을 맡기면 안 되겠다고 생각 하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스가랴는 명을 받아서 양을 치는데, 자기 혼자 양 떼 치기 어려우니 3명의 삯꾼 목자를 고용해 같이 양떼를 칩니다. 그리고 양을 칠 때 필요한 막대기 2개를 구해서 하나는 은총이라 쓰고, 하나는 연합이라고 씁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백성을 섬기기보다 도축용 가축 기르듯 하니, 하나님이 직접 스가랴를 시켜 백성을 돌보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고, ‘너희가 한 목자, 진정한 목자인 하나님 안에서 연합 될 것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상징적인 행동으로 3명의 목자와 같이 양을 치는데, 3명의 삯꾼 목자들도 무언가 성실하지 않았는지, 스가랴가 양치는 일을 그만 두라 할 수 밖에 없었고, 스가랴 혼자의 몸으로 양떼를 돌보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양떼들도 어지간히 목자의 말을 듣지 않았는지 스가랴가 화가나 나는 더 이상 너희를 돌보지 않겠다. 죽을 놈은 죽고 망할 놈은 망해라.’합니다.

그러면서 은총이란 막대기를 꺾으니, 처음의 장사꾼 목자들이 스가랴가 더 이상 양떼를 돌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들이 다시 도축용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면서 스가랴에게는 그동안의 수고비로 은 30을 줍니다.

하나님은 그 은 30을 성전금고에 넣으라고 하시고, 스가랴는 실행합니다.

참고로 가롯 유다는 예수님 배신의 대가 은돈 30을 성전에 던지고, 대제사장은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무연고자들의 무덤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스가랴는 연합이라는 막대기도 부러뜨립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을 분열 시키는 것인데, 하나의 나라로 힘을 발휘 못하는 것이죠.

우리 민족의 현실도 너무 아픕니다.

 

여호와께서 이번에는 스가랴에게 이번에는 못 된 목자 역할을 하라고 합니다. 이것의 상징적인 의미는 여호와께서 한 목자가 일어날 것인데, 그는 양을 돌보기는커녕 오히려 잡아먹는 못된 목자이고, 이 목자는 칼을 맞아 팔이 오그라들고 눈이 멀게 될 것이다.’라고 저주 하십니다.

역시 정확히 어느 때의 나쁜 지도자들을 말하는지 특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121-9절은 요한계시록의 20장의 내용과 거의 유사한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온 세상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오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다 멸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스가랴 12장에서도 여러 나라들이 진격해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그 때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싸우시기도 하고, 유다 백성들을 타오르는 횃불처럼 만들어 주변 민족을 다 불사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 스가랴 12장과 요한계시록20장이 같은 사건을 기록 한 것처럼, 참으로 유사한 상황입니다.

 

11-14는 예수님의 해 받으신 후의 상황 같은데,

하나님이 다윗 집안과 예루 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시고, 그리고서는 나 곧 그들이 찔러 죽인 그를 바라보고서.’ 온 나라가 슬피 울 것이다.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슬퍼하는 여인들 묘사 같습니다.

 

10절의 영어성경 번역은

[나 여호와가 다윗의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이 창에 찔린 자를 볼 때에 심히 근심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리니 부모가 외아들과 장자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것처럼, 그들은 그를 위해 애통하고 울 것입니다.]

 

13. 예루살렘의 죄악을 씻는, 거짓 예언자들을 없애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희생으로 그렇게 되는 것을 묘사하는 듯한 내용 같습니다.

 

1절 그날이 오면 샘이 터져 다윗과 예루 살렘에 사는 사람들의 죄를 더러움을 씻긴다는데, 요한복음 7장에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구절을 예표 하지 않나 싶습니다.

2-6 공동번역이 더 매끄러운데, 그날이 오면 여호와가 우상을 없애고, 더러운 영을 받은 예언자들을 없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더러운 예언자가 되면, 부모가 자식이라도 죽이고, 운 좋게 도망친 자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처음부터 농사꾼 이었다고 둘러 된다는 내용입니다.

 

7절은 예수님이 해 받으신 후 제자들이 흩어지는 장면 묘사 같은데,

[칼아 일어나 목자를 처라. 양떼를 흩뜨려라.] 이 장면은 마치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시자 제자들이 다 흩어지는 장면 과 유사해 보입니다.

 

8-9절 여호와가 온 땅을 칠 것인데, 온 땅 3/2는 죽고, 3/1은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겠다고 하십니다.

 

14. 1,2절은 또 마치 징계 같기도 하고, 징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하나님이 세계의 여러 강대국들을 불러다가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여인들이 겁탈당하고 주민 절반이 사로잡혀 가는데, 절반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곤, 3절 부터는 하나님이 직접 나가 강대국들과 싸우시겠다고 하는데, 이 일이 왜 일어나야만 하는지는 알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이 약탈당하기도하고, 주민 절반이나 사로잡혀가는 일임을 볼 때 하나님의 징계 같기도 하지만, , 그 시점에서 하나님이 직접 적들과 싸우시는 것 보면 어떤 의미인지 추정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신구약 중간의 마카비 혁명은 강대국들과의 싸움이 아닌 셀류크스 왕조와의 싸움이닌, 이 때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예수님 이후 AD70년 쯤 티투스 황제에 의해 예루살렘 함락 당하는데, 이는 로마의 지배에 불만으로 일어난 독립 전쟁이지만, 유대인들이 패해서, 유대 민족이 온 세계로 흩어짐으로 스가랴서의 주민 절반이 남는다는 점에서 이때를 말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어떤 미래에 세계열강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이 약탈되지만, 인구 절반이 살아 남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스가랴서의 예언 전쟁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스라엘이 절반 정도 자국민을 잃은 상태에서는 마치 생화학전쟁을 펼칠 것이 예상되는 구절이 있는데요. 바로 12절에 적군들이 서 있다가 살과 눈과 혀가 썩어 들어 가는 저주를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유다에 의해 모여든 열국이 패하게 되는데요. 아무튼 이러한 전쟁은 참여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이것이 계시록에 나와 있는 마지막 싸움을 예표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 전쟁이 후에 하나님이 만국의 왕으로, 온 세상의 유일한 신으로 등극하시고, 이방 나라들 전부 하나님께 속한 존재들이 되고, 초막절에는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오게 된다는 것으로 스가랴 서는 막을 내립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재림 예수님 이후 완전히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는 것을 미리 본 것처럼 묘사되고 끝이나는 것이죠.

 

참고로 초막절에 대해 살펴보면,

레위기 23:43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막절을 지키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후 광야 생활 중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이스라엘 대대로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후대에는 풍성한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즐거워하도록 초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우리로 치면 추석쯤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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