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서내용 살펴보기
학개 뜻 : 학개는 '여호와의 축제, 나의 절기'란 뜻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축제 절기에 태어났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는 것 같습니다.
배경 :
렘29장 10절에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70년 포로생활후 귀환 약속이 있습니다.
586년 시드기야 왕때 남왕국이 멸망하면서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간 것이 3차 포로로 끌려간 것이데,
포로 귀환해온 사람들이 성전을 완공한 때가 516년이니, 3차 포로로 끌려가고, 돌아와서 성전완공까지 꼭 70년이 됩니다.
주석들을 보면, 학개 2장 3절에 ‘너희 남은 사람들 가운데, 옛날 찬란하던 성전을 본 사람이 있느냐?’ 하는데, 이 구절을 들어 학개선지자가 어린 시절에 성전을 보았을 것이고,
이것을 근거로 나이를 80세쯤으로 추정하는 주석들이 많습나다.
그런데, 이 구절이 학개의 어린 시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보았다고 단정 하는 것은 좀 무리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대로 하나님을 말씀을 전달 받아 전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너희중에 이전 성전을 본 사람이 있지? 그 때와 비교해 보면 어떠니?’이런 의미인데, 이것을 확대해서 학개가 어릴적에 성전을 봤다고 하는 것은 무리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스룹바벨이나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가서 대언 하는 것 보면, 그들 보다는 나이가 많을 수는 있을 것 같지만, 그게 꼭 절대적으로 나이가 많아야 된다는 법도 없으니, 나이 추정은 모름으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학개서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배경적 기록은 에스라서 1-6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알게 됩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의 고레스에의해 무너지고,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칙령에 의해 유대민족이 귀환하라하고, 성전도 지으라는 허락을 받습니다. 이때 지도자는 스룹바벨 총독과 여호수아 대제사장이고 이들과 함께 귀한한 사람들을 1차 포로 귀환자 들이라 하고, 약 5만명쯤 됩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초기부터 성전짓기를 시작하는데, 성전 기초 공사 까지는 마칩니다.
그런데, 이때, 사마리아 지역의 이방인들이 자신들도 여호와를 섬기고 싶다며 성전 공사에 끼여달라고 합니다.
귀환공동체가 보기에 유대인도 아니고, 여러 잡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여호와도 섬기겠다는 다종교 신앙으로 끼려는 것 같아.. ‘너희와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하며 거절합니다.
이에 이방인들은 앙심을 품고,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왕에게 이들이 반역을 도모하려 성전 짓는다고 비방의 글을 올리고, 이에 아닥사스다 왕은 정말 그런 것 같아 성전 공사를 중단시킵니다.
그렇게 성전공사가 중단된지 16년 정도 흘렀고,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와 스가랴에게 임해 귀환공동체를 독려하여 다시 성전 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페르시아 관리들이 아닥사스다왕의 후계자인 다리우스 왕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들이 고레스 왕의 허락을 받고 공사를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진짜 그런지 문서를 살펴봐 주십사하는 글을 올리고. 다리우스 왕이 찾아보니, 고레스칙령 원문이 나와서 다시 성전 공사를 허락하는 조서를 내립니다.
그래서 성전 공사 다시 재기한지 4년 만인 bc 516년에 성전을 완공하게 됩니다. 이것을 스룹바벨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내용이 에스라서 1-6장의 내용이고,
유대민족 적들의 방해로 성전공사 중단된 배경에서 다시 성전공사를 독려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한 것. 이것이 바로 학개서의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개서 본문으로 들어가면, 초반에 조금 당황스러운 것이. 성전공사가 중단된 것은 유대 적들의 비방에의하여 공사가 중단 되었음으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페르시아 왕이 성전공사 재개를 하게 할 테니 공사를 시작하라는 내용이면 이해 될 것 같은데, 그것 보다는, 너희가 성전 지을 마음이 없다고 책망하심으로, 귀환한 유대인들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울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점이 우리생각과는 다른 하나님이심 아닌가싶습니다. 물론, 공사를 재개하자, 페르시아에게 고레스 칙령 원문이 나와 정치적으로 문제가 해결 되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는데, 정치가 먼저 해결 되고 시작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고 정치나 제도적인 뒷 받침이 따라오는 케이스가 되는 것 같습니다.
주요 등장 인물로 주목할 만한 인물은 역시 유대 총독으로 세워진 스룹바벨입니다.
스룹바벨이란 이름의 뜻은 '바벨론에서 난 사람'이란 뜻인데요.
그에 관해서는
마태복음 1장에 12절.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사람인 것이지요. 여기서 여고냐는 남왕국 19대 왕인 여호야긴왕입니다.
학개서 마지막 부분에는 스룹바벨에게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이 주어지는 부분이 나오는 데요. , 다윗의 계보를 잇는, 메시야 가문을 이을 사람이라는 점도 있을 것 같고, 에스라서에 보면, 이방 여인을 취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많은 레위인과 제사장,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이방인 여인 취한 문제가 대두 되는데. 스룹바벨은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점을 높이 보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1장.
‘다리우스 왕 이년 여섯째 달, 그 달 초하루에 학개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스룹바벨 유다 총독과 여호수아 대제사장에게 전했다.’로 시작합니다.
“‘너희가 때가 되지 않았다.’라고 하는데, 그 말은 핑계일 뿐이고, 진짜는 나의 집 짓는 것은 뒷전이고 너희 집안 꾸미는 데에만 정신 팔렸기 때문 아니냐?, 그래서 너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소득이 거의 없는 헛일 아니었냐! 정 돈이 없으면, 산에 가서 나무를 베다가 나무 텐트 성전이라도 만들어봐라. 그럼, 내가 너희의 마음을 기쁘게 여겨 거기서 내 영광을 드러내겠다. 너희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니, 가뭄이 계속 되게하겠다.”라는 내용입니다.
요약하자면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의 맘에 나를 두는 것이다.]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이 말을 듣고, 스룹바벨, 여호수아, 백성들이 두려워합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자 주님이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라고 안심을 말을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우리 삶만을 위하는 것은 정말 헛일이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만이 가치 있는 일임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여기서 마음의 원문은 루아흐 ruach로 우리가 아는 ‘숨, 바람, 영’이란 뜻이고, ‘감동시키다’는 우르 ur로서 깨다, ‘분발하다, 일으키다, 각성하다.’라는 뜻입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를 원문대로 번역해보면,
“모든 백성의 영을 깨우셔서.”라고 번역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다리우스왕 2년 6월 24일에 백성들이 성전 짓는 일을 시작했다고 기록되는데요. 학개선지자에게 6월 1일에 말씀이 임했으니, 말씀이 임하고, 백성들에게 전해지고, 백성들이 감동받아 성전 짓기를 시작하는 시간이 약 23일 동안 이루어 진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2장.
1절. 그해 7월 21일에 다시 대언. 대신 전한다.
3-9 ‘너희 중에 이전 성전을 본 사람이 있지? 그 때와 비교해 보면 하찮게 보일 수 있으나, 그러나 힘을 내어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 힘을 내어라. 출애굽 때의 언약이 아직 변함없고,’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지금 성전을 이전 영광보다 크게 하고, 평화가 깃들게 하겠다.’라는 약속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16년 간이나 중단되었고, 여전히 이방의 대적들은 항상 유대 민족을 위협하는 상황 가운데 놓여 있는데, 성전 짓다가 그들을 자극할 까봐 눈치나 보는 상황. 이렇게 힘들고 어려워하는 귀환 공동체에 하나님이 힘을 내라고 격려와 찬란한 영광까지 약속을 하십니다.
여기서 또 주목할 만한 구절은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인데요. 여기서 역시 루아흐입니다. 구약에서도 지상에 하나님의 영이 계신 적이 있었다는 것이, 적어도 이 구절에서는 확인 되는 것이고. 개인이라기보다는 공동체 가운데 계신 것으로 표현되는 것같고, 그러면, 오순절때와 비교해보면, 오순절 이후의 성령님은 각 개인의 마음속에 오신 것.같은 차이가 있어보이는데, 이것은 연구해 보면 좋을 주제같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안전기지가 되어주시기를 즐거워 하는 것 같아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해 9월 24일에 학개 선지자에게 다시 말씀이 주어지는데, 지난번 격려의 말의 내린지 약 2달 3일만에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초반에는 16년전 성전의 기초 공사했는데, 중단되고, 오늘까지의 날을 회상해보면 너희가 부정해져서 너희 소출이 없었는데, 오늘 부터는 복을 내리겠다는 선언입니다.
10-19 “제사장들에게 물어봐라. ‘거룩하게 바쳐진 고기를 싼 옷이 다른 음식에 닿으면 닿은 음식이 거룩해지냐고?’”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시체에 닿은 사람이 어떤 것에 닿으면, 닿은 것은 모두 더러워지나?’ 물으니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이 백성들이 부정해져서 재해 등으로 소출이 터무니없이 적었던 것을 생각해 봐라. 그런 지난 날을 곰곰이 생각해봐라. 그러나, 오늘 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내리겠다.’
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해진 이유를 학개서에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는데, 에스라서 9장을 보면, 제사장과 레위인 까지 주변 이방의 역겨운 짓을 따라하고, 그들과 통혼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러한 일들로 부정하게 되었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런 백성들의 부정은 소출이 적은 것으로 벌을 받는 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고. 이제부터는 부정한 것을 끊고 살아라. 그러면 소출이 많은 복을 내리겠다는 것으로 이해 하면 될 것 같다.
20-23까지 다시 그달 24일에 말씀이 임했다는데, 10절에도 24일이고, 20절에도 같은달 24일 하는 것보니, 오전에 말씀주시고, 오후에 또 말씀을 주신 것 같기도하고. 아님, 10절부터의 말씀은 귀환공동체 전체에게 하는 이고, 20절 부터는 스룹바벨개인에게 주는 메시지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20-23절 말씀은 스룹바벨에게 가서 전하라는 내용인데, 왕국들의 권세를 깨뜨리실 것이고, 나의 종인 스룹바벨 너를 높이 세우고, 옥새로 삼겠다는 굉장한 약속의 말씀을 하시고 끝이납니다.
학개서 내용을 살펴보니, 마음에 와닿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의 맘에 나를 두는 것이다.]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이러한 뜻의 내용들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귀중한 책 아닌 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