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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163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시편 6장 6절.

20220501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시편 6장 6절. 우리의 삶에 어떤 어려움도, 어떤 악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떤 때는 밤마다 울정도의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다. 십자가고난 앞에서 예수님도 고뇌하셨다. 그러한 때 다윗과 예수님은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내었다. 그리고 평안을 얻었다.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평안을 주실 것이다.

말씀묵상 2022.05.01

바울의 강변

(바울이 개척한 교회에 할례파 기독인들이와 너희도 할례 받아야 된다고 하자, 그들이 다 할례 받음 . 그러자 바울이 열받아...) 할례를 받는 다는건, 율법 전체를 다 지키겠다는 선언과 같다. 그런데, 율법 전체를 다 지킨다는 건 불가능 한 것이 아닌가? 또다른 의미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바울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강변한다. "할례 받는 것은 율법으로 구원받겠다는 선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그리곤, 자신은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고, 굳이 흔적을 바란다면, 예수 전하다 상처난 자국. 이것 밖에는 없다고.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 갈라디아서 6장.

말씀묵상 2021.05.25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에 대해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

에베소 1장을 보면 창세전에 택함받았다는 표현이 나오며, 우리의 구원은 예정 되었다는, 예정론을 다룬다. 근데, 왜 구원받는지를 모른체 그냥. '택함 받아서'라고 하면. 좀 찜찜해 진다. 반대의 입장이 되면, "난 왜? 택함 못 받은 건데?" 라는 질문에 딱히 답하기 어렵게 된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그럼 '인간 쪽에서도 무언가 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 만약, 인간쪽에서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구원받는 다면....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에 대해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기준 이외에 다른 이유는 찾기 어려운 것 같다. [예수님에 대해 한 번도 못 들어 본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 라는 논의 에는,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그 부분은 주님께서 합당하게 처리해 주실 것을 믿을 뿐이다.]

말씀묵상 2021.05.18

진리를 내세우면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문제는 '타인의 신념을 폭력을 쓰더라도 제거 하겠다.'는 태도이다.

'화평케하는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라는 가르침과 '내가 칼을 주러왔다(가족이라해도 진리에 대한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라는 예수님의 모순적 메시지 앞에 어찌 해야 하는가? 화평과 진리가 공존하기 어려운가? 모두다 포용하면 화평하기는 하나, 진리가 사라진다. 진리를 내세우면 다툼이 일어난다. 흠......내가 싫어하는 것이 모든 것을 영적해석인데, 예수님의 칼 만큼은 영적 해석을 해야겠다. 실제 칼로 타인을 해하는 싸움 하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론이나 사상에 대해서 물리칠 수 있는 것이 말씀의 검이고, 실제 사람들에게는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를 실천해야, 모순없는 이해가 되지 않겠는가? 맥그라스 말대로(신학블로버스터 열심히 듣고 있음.ㅋ) 종교가 없어야 평화가 오는..

말씀묵상 202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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